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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즈음에 읽은 '더 로드'가 드디어 영화로 개봉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는 원작의 참혹한 풍경과 비고 모르텐슨에 대한 호감 때문에 기대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인지도가 없는 감독의 신작이란 사실 때문에 '눈먼 자들의 도시'처럼 원작에 못미치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소설을 읽은지 1년이 넘은 상태에서 영화를 보니 그 때 읽으면서 상상했던 참혹한 배경이 비교적 잘 어우러지게 묘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색빛으로 뒤덮힌 참혹한 풍경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라든지 자신과 같은 동족을 잡아먹는 인간의 잔인함을 묘사한 에피소드들은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상상하던 수준 그대로 옮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가장 잔인하다고 느꼈던 아기 구이 부분이 묘사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집 안 창고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만으로도 인간들의 잔학함을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아버지 역을 연기한 비고 모르텐슨의 열연이었다. 책을 예전에 읽은 덕분에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 그다지 감정의 이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들을 보호하려는 아버지의 모습을 연기한 비고 모르텐슨의 연기 덕분에 영화에 몰입하면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폐허가 된 길을 아들과 걸어가는 과정 속에서 보여지는 아버지의 초췌한 몰골은 정말 소설 속의 아버지같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황량한 길을 걸으면서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들며 경계하고,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때 고통과 두려움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폭포 속에서 몸을 담구고 집에 들어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기 위해 비닐로 둘러싼 신발을 벗고 마를대로 마른 나체의 몸을 드러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배우 스스로 몸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아쉬운 것은 영화 속의 나레이션이었는데, 초반부부터 인간들이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독백으로 알리는 것보다는 천천히 장면들을 묘사하면서 인간들의 잔혹한 면들을 드러내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상으로 묘사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내면을 나레이션으로 표현하되,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하면서 그의 회상을 플래쉬백으로 표현한 점은 괜찮았다. 또한 소설 속의 에피소드들을 원작에 대한 무리한 전복이나 왜곡없이 묘사함으로써 소설을 읽은 독자들도 만족할만한 영상을 보여준다. 특히 소설 속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던 남자와 아내와의 기억을 보다 보강함으로써 보다 인간적인 감정을 불어넣은 점이 마음에 든다.

ps1.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오는데,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자동차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듯한 음성을 통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들려준다. 그리고 음성이 사라진 뒤 음악이 들려오는데,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이 감정의 울림을 안겨준다.

ps2. 개봉한지 1주일이 지난 금요일에 뒤늦게 영화를 봤는데 근처의 영화관들은 벌써 상영관이 없어진 상태였다. 좋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받지 못한 체 1주일 만에 사라진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ps3. 씨네 21의 헌즈 다이어리를 보니 '불꽃'을 무조건 정치적인 메시지로 해석하는 무식한 애들 때문에 짜증난다. 영화나 책을 봤다면 저런 댓글은 절대 쓰지 않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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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노우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