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 분미' 상영 후 정성일 평론가 강연 후기
2010/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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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쓴 글/영화 이야기
15일 저녁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엉클 분미'를 감상했다. 사실 이전까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란 감독의 영화는 본 적이 없어서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한 상태로 영화를 봤는데,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겐 영화가 난해하면서도 기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반적인 스토리 구성의 측면에서 영화를 보면 설명이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영화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기묘한 몇몇 장면들은 흥미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예상 외로 라오스 내전이나 태국 내의 공산주의자 숙청같은 정치적 이슈를 영화 속에 언급함으로써 태국의 정치적 이슈나 역사에 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효과도 지닌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난 후 정성일 평론가 님의 영화 강연을 듣고 나서야 깜깜하게 느껴지던 영화가 조금이나마 내 머릿 속을 밝혀주는 느낌이 들었다. 나름대로 필기를 하며 설명을 들었는데 정작 집에 와서 메모를 읽어보니 내가 쓰고도 무슨 이야기인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쓴 것 같다. 블로그에 그 때 적은 낙서를 옮겨본다.
- 정성일 평론가께서 아핏차퐁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건 2002년 칸 영화제 당시 주목할 만한 시선의 상영작이었던 '친애하는 당신'이었다고 한다. 당시 영화를 보면서 그는 영화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후 '열대병'을 보면서 매혹되었지만 한편으론 그가 천재인지, 사기꾼인지 의구심이 생겼지만 2007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징후의 세기'를 보고 승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디 영화제를 주최하던 정성일 평론가는 3년 전부터 그에게 심사위원 제의를 했지만 자신이 영화 작업을 하고 있으며 그 영화는 어떤 영화제에 나가게 될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올해 칸 영화제 이후 아핏차퐁 감독의 비디오 작업 중 '에머랄드'란 단편을 보고 우리 시대의 영화 감독들이 그와 같은 시기에 활동하는 것은 지옥이란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 영화학자들에 의하면 현대 영화가 2가지 경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최근 본 시리즈같은 헐리우드 영화처럼 기존 영화에 비해 압도적인 쇼트 수를 보일 정도로 지나치게 빠르거나 혹은 허우 샤오시엔의 '해상화'나 아핏차퐁의 '엉클 분미' 같은 영화처럼 극단적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이런 슬로 시네마의 특징은 단순히 느리게 찍는게 목표가 아니며, 영화에서 이미지가 아닌 시간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라고 한다.
- 세계 영화사에서 태국 영화가 인식된 계기는 1971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촬영 때문이었다고 한다. 태국 로케이션 촬영을 하면서 현지 스텝들이 헐리우드 영화의 수많은 테크닉을 수련할 수 있었으며 세계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1970~80년도의 홍콩 영화가 서브 컬쳐를 이루면서 태국 영화에 믹스되었다고 한다. 한편 태국의 반공적인 분위기 그리고 자본주의와 봉건주의가 결합되면서 태국의 오리엔탈리즘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태국 영화는 자기 원시화를 통해 서구에 보여줌으로써 이를 아시아 전역으로 확장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본래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미국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다고 한다. 홍상수 감독도 아핏차퐁처럼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다고 하는데, 홍상수 감독이 국내로 돌아올 즈음에 아핏차퐁 감독이 유학을 시작해서 서로 만난 적은 없다고 한다. 그는 94년에 영화가 아닌 비주얼 작업을 시작했는데 60년대의 앤디워홀 팩토리 식의 실험영화에 가까운 비디오 아트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설치 예술가로 인식하면서 설치작업을 전시했는데, 인스톨레이션 작업에서 필름 워크를 한 점은 서구 영화적 기준에서 볼 때 기이하다고 한다.
- 아핏차퐁 영화의 중요한 테마는 '기억'이라고 한다. 즉 '기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문제를 인스톨레이션 작업에서 영화로 확장한 것이라 한다. 그는 기억을 하나의 설치라고 생각하고, 기억을 설치하는 메쏘드로 멀티 스크린을 이용한다고 한다. 아핏차퐁 감독의 인스톨레이션은 비교적 단순한 편인데, 몇 개의 스크린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진행함으로써 서로 다른 시간의 동시성을 중시한다고 한다. 한편 멀티 스크린을 영화로 옮겨올 때 문제점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바로 영화는 싱글 스크린을 통해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의 스크린 위에 여러 개의 씬이 펼쳐진다면 어떨까라는 고민을 통해 문제점을 해결했다고 한다.
- 아핏차퐁 감독은 자기 문화 안에서 '환상'과 '변태(transformation)'을 끌어오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한다. 정성일 평론가는 이미 아핏차퐁 감독 이전에 유사한 방식으로 영화를 진행한 사람이 있었다고 말했는데, 바로 데이빗 린치의 '로스트 하이웨이'나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보여졌다고 한다. 그는 아핏차퐁의 영화를 미래의 영화라 지칭한 이유는 바로 이런 방식을 통해 극한까지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스님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촬영한다면 관객에게 설득하고자 인물에 관해 쭉 나아간다면 아핏차퐁의 영화는 스님의 눈으로 세계를 보면 어떨까하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완전한 위치 변화를 요구한다고 한다.
- '엉클 분미'의 원재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에서 기억하는 전생을 의미하는 단어 'lives'가 복수인 점은 누구의 꿈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공주와 하인이 등장하는 환상의 장면 전 분미가 원두막에서 눕는 낮 장면 그리고 해먹에서 잠이 든 퉁의 모습을 보면 순서 상 퉁의 꿈이라 볼 수 있지만 영화는 공주와 하인 씬 이후 정글을 보여줌으로써 공주가 과연 누구의 전생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이런 불분명함으로 인해 누구의 꿈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전혀 이야기가 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고 한다.
- 한편 정성일 평론가는 영화에 등장하는 분쏭이 정글 속으로 들어간 후 퇴화하여 털이 난 원숭이 귀신이 된 점을 지적했다. 분미는 한 때 공산주의자들을 살해한 댓가로 업보를 치르는 것이라고 지난 일을 후회하는데, 이것이 마치 불교의 업보처럼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죄갚음을 저주의 형식으로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영화 속의 정글은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 속의 지리산처럼 빨치산의 소굴같은 곳이라고 한다. 감독은 이 지역에서 영화를 직을 때 지역적인 특색을 살리기 위해 퉁을 제외한 영화 속 인물을 현지에서 캐스팅 하였는데, 실제로 태국에서 이 영화를 상영할 때 관객들이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자막을 첨부했다고 한다. 결국 분쏭의 모습은 우화가 아닌 태국의 정치와 불교적 개념을 믹스한 상징이라는 것이다.
- 아핏차퐁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논리가 아닌 상상력의 계단에 관한 영화라고 칭하면서 관객들이 다른 이야기를 하길 원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성일 평론가는 만약 이 영화가 논리적인 영화라면 전생의 깨달음을 얻은 분미가 동굴에 가서 죽은 후 숲을 보여주고 끝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영화는 분미의 장례식 후 약 15분 간 방에서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정성일 평론가는 이 장면이 이상하게 찍혔다고 말하며 영화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쇼트가 등장하지 않다가 퉁이 일어서서 밖을 나가려는 순간 유체이탈한 퉁이 자신을 바라보는 쇼트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장면이 해석이 아닌 선택해야 하는 문제를 다룬다고 말한다. 퉁이 TV를 유심히 바라보는 장면에는 TV화면이 등장하는데, TV는 태국의 정세를 담고 있다. 감독은 TV를 본다는 것과 태국의 현실에서 눈돌리는 것이란 두 개의 선택을 둠으로써 태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두 개의 선택임을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엉클 분미'가 문화적 맥락과 정치적 이슈를 영화적 매체의 확장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한다.
ps. 상영 전 로비에서 포스터와 보도 자료집을 배포하고 있었는데, 무심코 가져온 포스터 안에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사인이 들어 있었다. 사실 원숭이 귀신의 빨간 눈이 새겨진 포스터가 마음에 들었는데 이렇게 싸인까지 들어 있어서 가져온 보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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