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가 역시나... 이번 시즌(07-08) 동안 준우승이 커뮤니티실드, 칼링컵, 프리미어 리그, 챔피언스 리그, 그리고 유로 2008... 무려 6번을 준우승이라는 전설(?)을 남겼다. 2010년에는 독일이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안아보길 기원한다.
BLOG ARTICLE 2008/06 | 13 ARTICLE FOUND
- 2008/06/30 나는 전설이다... -발락-
- 2008/06/27 2010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조추첨 결과 (2)
- 2008/06/27 학교 가는 길 (Buda as sharm foru rikht, 2007)
- 2008/06/25 스케치북 선물 보내기
- 2008/06/25 천국의 가장자리 (Auf Der Anderen Seite, 2007)
- 2008/06/23 카프리콘 원 (Capricorn One, 1978)
- 2008/06/20 미얀마 이재민 돕기 배너 이벤트
- 2008/06/15 독수리 착륙하다 (The Eagle Has Landed, 1976) (1)
- 2008/06/12 더 킹 (The King, 2005) (4)
- 2008/06/08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2007) (4)
혹시나가 역시나... 이번 시즌(07-08) 동안 준우승이 커뮤니티실드, 칼링컵, 프리미어 리그, 챔피언스 리그, 그리고 유로 2008... 무려 6번을 준우승이라는 전설(?)을 남겼다. 2010년에는 독일이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안아보길 기원한다.
한국, 일본 양 국가에게는 서로 최악의 조로 편성된 것 같다. 일본의 경우 유럽파들로 구성된 호주와 최근 급부상한 우즈베키스탄을 만난 점이 특징인데, 특히 우즈벡의 경우 3차 예선에서 사우디와 함께 가장 좋은 성적으로 진출한 팀이어서 힘든 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카타르, 바레인도 쉽지 않은 상대이니 일본으로서는 모든 팀들이 힘든 상대로 보여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A조의 일본이나 우즈벡을 피했지만 평소 열세를 보여왔던 상대팀들과 같은 조라는 점이 아쉽다. 중동 국가 팀들 중 우리나라가 항상 열세를 보여왔던 사우디와 이란을 만난 점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특히 사우디는 최근 4경기 동안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상대이고, 이란도 승부하기 힘든 상대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중동팀들 중 가장 약체인 아랍에미리트를 만난 점이 행운이지만 중동 원정은 힘들 것이다. 북한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약팀인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3차 예선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한 만큼 반드시 북한이나 UAE를 상대로 승리를 해야 승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종 예선의 걸림돌은 사우디, 이란보다 감독이 아닐까 생각한다. 8무로 예선 통과하는 게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올만큼 그 분의 무재배가 걱정된다.)
ps. fifa.com에서 우연히 코엘류 사진이 있어서 들어가 보니 튀니지 감독으로 취임했다고 한다. 오랫만에 코엘류 얼굴을 보니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아프리카 예선도 굉장히 빡센 걸로 알고 있는데 과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경우 A조의 일본이나 우즈벡을 피했지만 평소 열세를 보여왔던 상대팀들과 같은 조라는 점이 아쉽다. 중동 국가 팀들 중 우리나라가 항상 열세를 보여왔던 사우디와 이란을 만난 점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특히 사우디는 최근 4경기 동안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상대이고, 이란도 승부하기 힘든 상대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중동팀들 중 가장 약체인 아랍에미리트를 만난 점이 행운이지만 중동 원정은 힘들 것이다. 북한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약팀인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3차 예선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한 만큼 반드시 북한이나 UAE를 상대로 승리를 해야 승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종 예선의 걸림돌은 사우디, 이란보다 감독이 아닐까 생각한다. 8무로 예선 통과하는 게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올만큼 그 분의 무재배가 걱정된다.)
ps. fifa.com에서 우연히 코엘류 사진이 있어서 들어가 보니 튀니지 감독으로 취임했다고 한다. 오랫만에 코엘류 얼굴을 보니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아프리카 예선도 굉장히 빡센 걸로 알고 있는데 과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01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바미안 석불을 폭파시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학교 가는 길'은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탈레반의 악행을 인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소녀를 통해 탈레반의 악행을 고발한다는 점에서 세디그 바르막 감독의 '천상의 소녀'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천상의 소녀'가 생존을 위해 남장한 소녀의 안타까운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면 '학교 가는 길'은 아이들의 행동을 통해 탈레반의 불상 파괴의 모습과 여성을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처벌하는 인권탄압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이 특징이다.
영화의 초반부는 마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천국의 아이들'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이의 순수한 면을 인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학교 가는 길'이 취하고 있는 촬영 방식은 앞에서 언급한 영화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 '천국의 아이들'같은 영화가 미디엄 쇼트 중심으로 인물들의 모습을 객관적인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면, '학교 가는 길'은 클로즈업 쇼트를 통해 박타이의 표정을 담아냄으로써 소녀의 감정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객관적인 거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소녀를 추적하는 형식으로 그녀의 행동을 가까운 거리에서 카메라로 촬영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거리에서 박타이의 행동을 고정된 카메라로 담아내는 장면들이 있는데 박타이가 이동하는 풍경 속에 파괴된 불상이 있었던 계곡이 강조된다.
파괴된 불상이 있었던 계곡의 동굴 속에 살고 있는 박타이라는 소녀는 건너편 동굴에 사는 압바스가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학교에 가고 싶어한다. 공책이 있어야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압바스의 말을 들은 박타이는 공책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고생을 한다. 엄마에게 돈을 구하기 위해 떨면서 가파른 고원을 넘어 다니면서 엄마를 찾아다니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돈을 구하지 못한 박타이는 달걀을 팔아 공책을 살 수 있다는 압바스의 말을 듣고 달걀을 팔기 위해 거리를 옮겨다니면서 달걀을 팔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소녀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거짓됨이 없고 수줍어 하며 박타이가 달걀을 내미면 어른들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를 무시한다. 심지어는 시계 수리를 하는 어른은 달걀을 사는 대신 시계를 사라는 요구를 하며 어떤 어른은 박타이의 소중한 달걀을 깨뜨리고도 그녀에게 미안함을 표시하지 않는다. 호기심 많고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맞이하던 박타이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지고 슬픔과 당혹감이 얼굴로 표현된다. 결국 박타이는 물물교환을 통해 천신만고 끝에 박타이가 원하던 공책을 구하게 된다. 어른들에게 이리저리 차이던 소녀는 공책을 구입하자 기쁨으로 가득찬 얼굴을 보여준다. 돈이 없어 공책을 제외한 필기구를 구입하지 못한 박타이는 어머니가 쓰던 립스틱을 들고 압바스와 함께 학교로 가게 된다. 하지만 달걀을 팔 때보다 더한 현실적인 장벽이 박타이의 순수한 동심을 파괴한다. 남녀가 분리되어 수업을 받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박타이는 선생에게 쌀쌀맞게 쫓겨난다. 여자 학교를 찾으라는 선생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나려다가 몇 번씩 교사를 찾아가 머리에 호두가 떨어져 맞은 남자 이야기를 알려 달라는 박타이의 모습은 간절하면서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ps. '학교 가는 길'의 우리나라 포스터를 봤을 때는 우리나라 배급사에서 특별 제작한 포스터인 줄 알았는데 구글에서 이미지를 검색해 보니 프랑스 포스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이 영화의 프랑스 어 제목은 'Le Cahier' 인데, 구글로 번역해 보니 노트북(공책)이란 뜻이라고 한다.
영화의 초반부는 마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천국의 아이들'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이의 순수한 면을 인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학교 가는 길'이 취하고 있는 촬영 방식은 앞에서 언급한 영화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 '천국의 아이들'같은 영화가 미디엄 쇼트 중심으로 인물들의 모습을 객관적인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면, '학교 가는 길'은 클로즈업 쇼트를 통해 박타이의 표정을 담아냄으로써 소녀의 감정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객관적인 거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소녀를 추적하는 형식으로 그녀의 행동을 가까운 거리에서 카메라로 촬영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거리에서 박타이의 행동을 고정된 카메라로 담아내는 장면들이 있는데 박타이가 이동하는 풍경 속에 파괴된 불상이 있었던 계곡이 강조된다.
파괴된 불상이 있었던 계곡의 동굴 속에 살고 있는 박타이라는 소녀는 건너편 동굴에 사는 압바스가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학교에 가고 싶어한다. 공책이 있어야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압바스의 말을 들은 박타이는 공책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고생을 한다. 엄마에게 돈을 구하기 위해 떨면서 가파른 고원을 넘어 다니면서 엄마를 찾아다니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돈을 구하지 못한 박타이는 달걀을 팔아 공책을 살 수 있다는 압바스의 말을 듣고 달걀을 팔기 위해 거리를 옮겨다니면서 달걀을 팔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소녀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거짓됨이 없고 수줍어 하며 박타이가 달걀을 내미면 어른들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그녀를 무시한다. 심지어는 시계 수리를 하는 어른은 달걀을 사는 대신 시계를 사라는 요구를 하며 어떤 어른은 박타이의 소중한 달걀을 깨뜨리고도 그녀에게 미안함을 표시하지 않는다. 호기심 많고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맞이하던 박타이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지고 슬픔과 당혹감이 얼굴로 표현된다. 결국 박타이는 물물교환을 통해 천신만고 끝에 박타이가 원하던 공책을 구하게 된다. 어른들에게 이리저리 차이던 소녀는 공책을 구입하자 기쁨으로 가득찬 얼굴을 보여준다. 돈이 없어 공책을 제외한 필기구를 구입하지 못한 박타이는 어머니가 쓰던 립스틱을 들고 압바스와 함께 학교로 가게 된다. 하지만 달걀을 팔 때보다 더한 현실적인 장벽이 박타이의 순수한 동심을 파괴한다. 남녀가 분리되어 수업을 받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박타이는 선생에게 쌀쌀맞게 쫓겨난다. 여자 학교를 찾으라는 선생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나려다가 몇 번씩 교사를 찾아가 머리에 호두가 떨어져 맞은 남자 이야기를 알려 달라는 박타이의 모습은 간절하면서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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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학교 가는 길'의 우리나라 포스터를 봤을 때는 우리나라 배급사에서 특별 제작한 포스터인 줄 알았는데 구글에서 이미지를 검색해 보니 프랑스 포스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이 영화의 프랑스 어 제목은 'Le Cahier' 인데, 구글로 번역해 보니 노트북(공책)이란 뜻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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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 씨앗 지역아동센터 | ||
원래 글은 안 쓸려고 했는데, 이렇게 글을 써야 선물이 가능하다고 해서 글을 남긴다. -.-; 닉네임을 남겼는데 저렇게 깨져서 나온다. 흑흑...
선물 보내기에 관심 있으신 분은 http://donorscamp.tistory.com/entry/giftsforchildren 에 들어가서 배너를 클릭하면 선물을 보낼 수 있으니 많이 참여 바란다.
현충일에 '더 킹'을 본 이후로 극장에서 영화를 본 지가 2주가 넘어버렸다. 사실 저번 주 주말부터 김기영 특별전이나 미션 같은 영화도 보고 싶었는데 감기까지 걸려서 몇일동안 집에 누워 있었다. 그나마 어제 몸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아서 답답한 기분도 풀 겸해서 스폰지하우스 중앙에서 '천국의 가장자리'라는 영화를 감상했다. 다행히 영화가 생각 이상으로 좋아서 기쁜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설 수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몸이 더 악화된 느낌이 들었다.
스폰지하우스는 여름 시즌에 일본 영화제 같은 형식으로 영화제를 개최하는데, 지난 주부터 씨네휴 영화제라는 형식으로 다양한 영화들이 개봉되었다. 상영작 목록들 중 '로맨스'나 '알렉산드라' 그리고 '천국의 가장자리' 같은 영화들이 눈길을 끌었는데 그 중 '천국의 가장자리'라는 영화가 로튼토마토 같은 곳의 평가도 괜찮아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파티 아킨 감독의 '천국의 가장자리'는 터키계 독일인인 네자트 악수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옴니버스 식 영화인데 독일과 터키를 배경으로 세 가지 에피소드가 진행된다. '에테르의 죽음', '로테의 죽음' 그리고 '천국의 가장자리'라는 세 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파티 아킨은 독일 내의 터키인들의 세대 갈등을 그리고 있으며 남성 중심주의의 환경 속에서의 비극과 터키 내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속의 비극 등을 '죽음'이라는 요소를 통해 대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에테르의 죽음'과 '로테의 죽음'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이야기이지만 영화 속의 구성이 상당히 유사하면서도 대비적인 특징이 있다. 예를 들면 초반 주인공인 네자트의 여정을 보여준 후 공산주의자들의 시위 장면을 보여주는 초반의 장면이라든지 부모 간의 갈등이 벌어지는 점,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비극이 발생한다는 점 등 장면마다 전편의 에피소드와 유사하면서도 대비적인 장면들을 보여준다는 점이 특징인데 마치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삼색 시리즈를 연상시킬 정도로 각각의 에피소드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천국의 가장자리'는 두 편의 에피소드를 종합하고 있는데 여러 인물이 만나 죽음을 삶의 희망으로 전환하는 화합과 용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ps. 영화에서 네자트의 아버지가 보는 책 이름이 자막으로 나오지 않아서 무슨 책인지 궁금했는데, 네이버 블로거 분이 정리한 글이 있어서 덕분에 무슨 책인지 알 수 있었다.
천국의 가장자리에 대한 궁금증 몇가지
스폰지하우스는 여름 시즌에 일본 영화제 같은 형식으로 영화제를 개최하는데, 지난 주부터 씨네휴 영화제라는 형식으로 다양한 영화들이 개봉되었다. 상영작 목록들 중 '로맨스'나 '알렉산드라' 그리고 '천국의 가장자리' 같은 영화들이 눈길을 끌었는데 그 중 '천국의 가장자리'라는 영화가 로튼토마토 같은 곳의 평가도 괜찮아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파티 아킨 감독의 '천국의 가장자리'는 터키계 독일인인 네자트 악수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옴니버스 식 영화인데 독일과 터키를 배경으로 세 가지 에피소드가 진행된다. '에테르의 죽음', '로테의 죽음' 그리고 '천국의 가장자리'라는 세 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파티 아킨은 독일 내의 터키인들의 세대 갈등을 그리고 있으며 남성 중심주의의 환경 속에서의 비극과 터키 내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속의 비극 등을 '죽음'이라는 요소를 통해 대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에테르의 죽음'과 '로테의 죽음'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이야기이지만 영화 속의 구성이 상당히 유사하면서도 대비적인 특징이 있다. 예를 들면 초반 주인공인 네자트의 여정을 보여준 후 공산주의자들의 시위 장면을 보여주는 초반의 장면이라든지 부모 간의 갈등이 벌어지는 점,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비극이 발생한다는 점 등 장면마다 전편의 에피소드와 유사하면서도 대비적인 장면들을 보여준다는 점이 특징인데 마치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삼색 시리즈를 연상시킬 정도로 각각의 에피소드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천국의 가장자리'는 두 편의 에피소드를 종합하고 있는데 여러 인물이 만나 죽음을 삶의 희망으로 전환하는 화합과 용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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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영화에서 네자트의 아버지가 보는 책 이름이 자막으로 나오지 않아서 무슨 책인지 궁금했는데, 네이버 블로거 분이 정리한 글이 있어서 덕분에 무슨 책인지 알 수 있었다.
천국의 가장자리에 대한 궁금증 몇가지
보통 우주 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탐험정신과 인간애 등을 그리고 있지만 '카프리콘 원'은 기존의 sf 영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주 여행을 다룬다. 재미있게도 영화는 미국의 달 탐사 조작 의혹같은 음모론이 실제로 있었다면 어떨까라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영화의 초반은 화성탐사를 목적으로 발사준비 중인 카프리콘 호를 둘러싼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출발한다는 기대감에 기뻐하는 세 명의 승무원들의 모습에서는 희망적인 인상이 보여지지만 발사대에서 발사 장면을 보기 위해 벌이는 정치인들의 알력 다툼, 그리고 승무원들의 가족을 향해 거침없는 질문들을 퍼붓는 언론인들의 모습을 통해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이 화성 탐사보다는 자신들만의 이권이나 특종을 노리는 사람들을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카프리콘 호가 발사되기 직전 영화는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된다. 카프리콘 호의 총 책임자인 켈러웨이 박사는 우주선이 발사되기 직전 승무원들을 불러 그들을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으로 이동시킨 후 마치 우주인들이 우주선을 타고 떠난 것처럼 조작한다. 박사는 승무원들에게 화성 탐사의 실체를 밝힌 후 탐사조작을 통해 점점 죽어가는 우주사업의 활로를 되찾기 위한 음모를 벌였다고 그들에게 고백한다. 화성 탐사의 실체를 안 승무원들은 진실을 알고 나서 밖을 나가려 하지만, 사실이 알려질 것을 대비해 가족들의 안전을 협박당한 승무원들은 할 수 없이 캘러웨이 박사의 음모론에 동참하게 된다. 가족과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받는 승무원들은 세트로 만들어진 화성의 모습을 표현한 스튜디오 안에서 연기를 하게 되는데 화성 탐사를 조작하는 과정이 비교적 설득력이 있었다. 예를 들면 승무원 한 명이 계단에서 내려와 화성의 표면에 착륙하는 순간을 슬로우 모션 버튼으로 화면을 조작해 마치 중력이 없어 천천히 표면에 착륙하는 모습으로 표현한 점이나 공기의 영향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펴진 성조기를 표면에 꽂는 모습이 인상적 이었다.
영화의 초반은 화성탐사를 목적으로 발사준비 중인 카프리콘 호를 둘러싼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출발한다는 기대감에 기뻐하는 세 명의 승무원들의 모습에서는 희망적인 인상이 보여지지만 발사대에서 발사 장면을 보기 위해 벌이는 정치인들의 알력 다툼, 그리고 승무원들의 가족을 향해 거침없는 질문들을 퍼붓는 언론인들의 모습을 통해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이 화성 탐사보다는 자신들만의 이권이나 특종을 노리는 사람들을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카프리콘 호가 발사되기 직전 영화는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된다. 카프리콘 호의 총 책임자인 켈러웨이 박사는 우주선이 발사되기 직전 승무원들을 불러 그들을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으로 이동시킨 후 마치 우주인들이 우주선을 타고 떠난 것처럼 조작한다. 박사는 승무원들에게 화성 탐사의 실체를 밝힌 후 탐사조작을 통해 점점 죽어가는 우주사업의 활로를 되찾기 위한 음모를 벌였다고 그들에게 고백한다. 화성 탐사의 실체를 안 승무원들은 진실을 알고 나서 밖을 나가려 하지만, 사실이 알려질 것을 대비해 가족들의 안전을 협박당한 승무원들은 할 수 없이 캘러웨이 박사의 음모론에 동참하게 된다. 가족과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받는 승무원들은 세트로 만들어진 화성의 모습을 표현한 스튜디오 안에서 연기를 하게 되는데 화성 탐사를 조작하는 과정이 비교적 설득력이 있었다. 예를 들면 승무원 한 명이 계단에서 내려와 화성의 표면에 착륙하는 순간을 슬로우 모션 버튼으로 화면을 조작해 마치 중력이 없어 천천히 표면에 착륙하는 모습으로 표현한 점이나 공기의 영향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펴진 성조기를 표면에 꽂는 모습이 인상적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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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배너 달면 미얀마에 희망이 전달됩니다
풀무원 블로그(http://blog.pulmuone.com)에서 미얀마 이재민들을 돕기 위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블로거 한 명이 배너를 달 때마다 2,000원씩 적립한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은 블로그에 배너를 달아주셨으면 한다. 크게 부담되는 이벤트는 아니니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으면 한다. :)
'독수리 착륙하다'는 실제로 있었던 나치의 무솔리니 구출작전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연합군의 이탈리아의 진격으로 이탈리아 내부에서 탄핵된 무솔리니를 항공부대를 이용해 구출한 히틀러는 성공에 도취된 나머지 영국의 수상인 처칠을 납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영화는 바로 히틀러의 불가능한 명령을 수행하는 독일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히틀러의 충복인 히뮬러의 명령을 받은 독일군 장교의 한탄스런 모습과 그를 쓸쓸히 바라보는 라들 대령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 속의 독일군의 수뇌부는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체 그저 뜬구름만 잡고 있는 한심한 집단으로 그려진다. 독일 내부로 접근해 오는 연합군의 폭격 속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독일군에게 연합국의 수장인 처칠 수상을 납치하라는 명령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명령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칼 융의 동시성 이론처럼 우연히 들어온 첩보가 전혀 엉뚱해 보이는 작전의 가능성을 높혀주게 된다. 처칠이 영국의 한 마을로 시찰과 휴양차 이동한다는 일급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히틀러의 불가능한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실행하는 흉내만 내고 있던 라들 중령은 작전의 성공 가능성을 읽어내고, 작전에 적합한 두 인물을 골라 비밀 작전을 수행하기로 결심한다.
라들 대령은 처칠을 납치할 특수부대의 대장으로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스타이너 공수부대 대장을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스타이너는 우연히 SS부대가 폴란드에서 유태인을 강제수용소로 차출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분노해 그들에게 대항하게 된다. SS부대에 저항한 댓가로 스타이너의 부대는 최전방으로 전출당하고 마는데, 라들 대령은 아일랜드 독립주의자이면서 모험을 즐기는 데블린과 함께 그를 방문해 작전에 합류할 것을 권유한다. 군인에 대한 명예를 중요시하는 군인인 스타이너는 라들의 권유에 응하기로 결심하고 폴란드 군 복장을 한 후 영국으로 침투하게 된다.
전반부에서 히틀러의 불가능한 작전을 군 내부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통해 패망에 다다른 나치의 한심한 수뇌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후반부는 스타이너와 그의 부대원들의 모습을 통해 불가능한 작전을 성공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군인들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스타이너의 부대는 비록 독일군이지만 일반적인 2차 대전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나치들의 악랄한 모습과는 달리 군인의 절도를 지키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폴란드 군으로 위장하면서 훈련을 하는 도중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독일군의 모습을 들 수 있는데, '피아니스트'에서 길거리에 유태인을 눕혀 놓고 총을 발사하는 독일군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인간적인 느낌을 보여준다.
ps. 스타이너 역을 맡은 마이클 케인의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인데,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명령을 위해 포기하지 않는 인간적인 군인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마이클 케인의 정보를 찾다가 안 사실인데 영국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라들 역을 연기한 로버트 듀발은 특이하게 한 쪽 눈을 가린 상태로 등장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에선 그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는 점이 아쉬었지만 군인의 절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키퍼 서덜랜드의 아버지인 도날드 서덜랜드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었는데 다른 두 명의 인물에 비해 가벼운 느낌이 있지만 사랑을 그리워하는 순박한 모습도 보여준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영화는 바로 히틀러의 불가능한 명령을 수행하는 독일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히틀러의 충복인 히뮬러의 명령을 받은 독일군 장교의 한탄스런 모습과 그를 쓸쓸히 바라보는 라들 대령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 속의 독일군의 수뇌부는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체 그저 뜬구름만 잡고 있는 한심한 집단으로 그려진다. 독일 내부로 접근해 오는 연합군의 폭격 속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독일군에게 연합국의 수장인 처칠 수상을 납치하라는 명령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명령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칼 융의 동시성 이론처럼 우연히 들어온 첩보가 전혀 엉뚱해 보이는 작전의 가능성을 높혀주게 된다. 처칠이 영국의 한 마을로 시찰과 휴양차 이동한다는 일급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히틀러의 불가능한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실행하는 흉내만 내고 있던 라들 중령은 작전의 성공 가능성을 읽어내고, 작전에 적합한 두 인물을 골라 비밀 작전을 수행하기로 결심한다.
라들 대령은 처칠을 납치할 특수부대의 대장으로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스타이너 공수부대 대장을 투입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스타이너는 우연히 SS부대가 폴란드에서 유태인을 강제수용소로 차출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분노해 그들에게 대항하게 된다. SS부대에 저항한 댓가로 스타이너의 부대는 최전방으로 전출당하고 마는데, 라들 대령은 아일랜드 독립주의자이면서 모험을 즐기는 데블린과 함께 그를 방문해 작전에 합류할 것을 권유한다. 군인에 대한 명예를 중요시하는 군인인 스타이너는 라들의 권유에 응하기로 결심하고 폴란드 군 복장을 한 후 영국으로 침투하게 된다.
전반부에서 히틀러의 불가능한 작전을 군 내부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통해 패망에 다다른 나치의 한심한 수뇌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후반부는 스타이너와 그의 부대원들의 모습을 통해 불가능한 작전을 성공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군인들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스타이너의 부대는 비록 독일군이지만 일반적인 2차 대전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나치들의 악랄한 모습과는 달리 군인의 절도를 지키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폴란드 군으로 위장하면서 훈련을 하는 도중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독일군의 모습을 들 수 있는데, '피아니스트'에서 길거리에 유태인을 눕혀 놓고 총을 발사하는 독일군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인간적인 느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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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스타이너 역을 맡은 마이클 케인의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인데,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명령을 위해 포기하지 않는 인간적인 군인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마이클 케인의 정보를 찾다가 안 사실인데 영국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라들 역을 연기한 로버트 듀발은 특이하게 한 쪽 눈을 가린 상태로 등장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에선 그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는 점이 아쉬었지만 군인의 절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키퍼 서덜랜드의 아버지인 도날드 서덜랜드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었는데 다른 두 명의 인물에 비해 가벼운 느낌이 있지만 사랑을 그리워하는 순박한 모습도 보여준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더 킹'은 한 남자의 욕망으로 인한 파국을 통해 기독교의 구원과 용서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제시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엘비스는 해군을 갓 제대한 청년이다. 그는 해군 복역기간 동안 모은 돈으로 차를 산 다음 어느 교회가 있는 곳을 향해 도착한다. 교회에 도착한 엘비스는 교회의 문 바깥에서 한 남자 목사의 설교를 묵묵히 지켜본다. 교회 내부에서는 데이빗 센도우 목사가 설교를 하면서 신학대학교 진학을 앞둔 자신의 아들인 폴을 소개하고 있다. 교회에 들어가지 못한 체 외부에서 목사의 설교를 지켜보는 행동은 마치 집에 들어가지 못한 체 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아이처럼 느껴지는데, 그가 데이빗을 직접 만남으로써 행동의 이유가 밝혀진다.
예배가 끝난 후 엘비스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목사의 자동차를 쫓아간다. 엘비스의 행동을 의심스럽게 생각한 데이빗은 차에서 내린 후 그와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데이빗은 엘비스를 반갑게 맞이하지만 그가 다름아닌 자신의 옛 연인으로부터 나온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엘비스를 냉대한다. 데이빗은 자신의 과거는 신을 만남으로써 용서 받았다면서 엘비스를 외면한 후 가족들에게 엘비스에게 상종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처럼 엘비스에게 데이빗의 가족은 자신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공간이지만 데이빗은 그를 가정의 평화를 파괴할 수도 있는 외부인으로 생각하고 그를 외면한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쓸쓸히 차를 모는 엘비스의 모습과 아버지가 사준 차를 타고 즐거워 하는 폴의 모습은 아버지로부터 인정 받은 자식과 인정 받지 못한 자식 간의 대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엘비스는 집을 임대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서서히 데이빗의 집으로 들어가려는 욕망을 구현하기 시작한다. 먼저 그는 데이빗의 딸인 말레리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힘없어 보이고 억눌린 분위기를 가진 말레리는 드라이브를 하자는 엘비스의 요청을 듣고 아버지의 경고를 언급하면서 거절하지만 결국 그와 함께 드라이브를 타게 되고 엘비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엘비스와 말레리의 비밀스러운 밀회는 점점 깊어지게 되고 엘비스는 데이빗의 집에 들어가 사랑을 나눌 정도까지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밀회는 말레리의 오빠인 폴에게 들통이 나고 만다. 아버지의 말을 충실히 따르던 폴은 엘비스가 사는 곳까지 자동차로 쫓아와 그에게 말레리를 만나지 말 것을 요구한다.
ps1. 이 영화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요소가 하나 있는데, 영화 초반 엘비스가 해군을 전역한 후 가방에 장총을 넣어 들고 가는 장면이었다. 군대를 전역 했는데 왜 총을 가져갈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총기 자유화가 된 나라이기 때문에 전역 기념으로 주는 건가.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장면이어서 생소한 느낌도 들었다.
ps2. 폴 다노가 열성적인 기독교 신도로 나와서 '데어 윌 비 블러드'같은 광기를 기대 했었는데 아쉽게도 영화 속 비중은 작은 편이어서 조금은 아쉬었다.
ps3. 동물의 시체를 보는데 불편한 관객들은 조금은 잔인한 장면이 있으니 조금 불편을 감내하시길 바란다. 재미있는 건 영화의 크레딧 말미에 영어로 영화 속에서 동물을 죽이지 않았다는 문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꽤 리얼한 장면이어서 난 진짜 시체인 줄 알았는데 가짜라고 문구가 나오니 당황스러웠다.
예배가 끝난 후 엘비스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목사의 자동차를 쫓아간다. 엘비스의 행동을 의심스럽게 생각한 데이빗은 차에서 내린 후 그와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데이빗은 엘비스를 반갑게 맞이하지만 그가 다름아닌 자신의 옛 연인으로부터 나온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엘비스를 냉대한다. 데이빗은 자신의 과거는 신을 만남으로써 용서 받았다면서 엘비스를 외면한 후 가족들에게 엘비스에게 상종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처럼 엘비스에게 데이빗의 가족은 자신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공간이지만 데이빗은 그를 가정의 평화를 파괴할 수도 있는 외부인으로 생각하고 그를 외면한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쓸쓸히 차를 모는 엘비스의 모습과 아버지가 사준 차를 타고 즐거워 하는 폴의 모습은 아버지로부터 인정 받은 자식과 인정 받지 못한 자식 간의 대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엘비스는 집을 임대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서서히 데이빗의 집으로 들어가려는 욕망을 구현하기 시작한다. 먼저 그는 데이빗의 딸인 말레리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힘없어 보이고 억눌린 분위기를 가진 말레리는 드라이브를 하자는 엘비스의 요청을 듣고 아버지의 경고를 언급하면서 거절하지만 결국 그와 함께 드라이브를 타게 되고 엘비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엘비스와 말레리의 비밀스러운 밀회는 점점 깊어지게 되고 엘비스는 데이빗의 집에 들어가 사랑을 나눌 정도까지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밀회는 말레리의 오빠인 폴에게 들통이 나고 만다. 아버지의 말을 충실히 따르던 폴은 엘비스가 사는 곳까지 자동차로 쫓아와 그에게 말레리를 만나지 말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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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이 영화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요소가 하나 있는데, 영화 초반 엘비스가 해군을 전역한 후 가방에 장총을 넣어 들고 가는 장면이었다. 군대를 전역 했는데 왜 총을 가져갈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총기 자유화가 된 나라이기 때문에 전역 기념으로 주는 건가.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장면이어서 생소한 느낌도 들었다.
ps2. 폴 다노가 열성적인 기독교 신도로 나와서 '데어 윌 비 블러드'같은 광기를 기대 했었는데 아쉽게도 영화 속 비중은 작은 편이어서 조금은 아쉬었다.
ps3. 동물의 시체를 보는데 불편한 관객들은 조금은 잔인한 장면이 있으니 조금 불편을 감내하시길 바란다. 재미있는 건 영화의 크레딧 말미에 영어로 영화 속에서 동물을 죽이지 않았다는 문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꽤 리얼한 장면이어서 난 진짜 시체인 줄 알았는데 가짜라고 문구가 나오니 당황스러웠다.
사실 난 밥 딜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의 노래를 단 한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으며 그의 일생에 관한 글이나 영상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어렵다는 반응이 실감이 났다. 우선 밥 딜런이란 인물의 일생을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6명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밥 딜런의 특성을 각 인물의 개성에 맞게 표현했는데, 감각적이면서도 함축적인 영상이 조금은 난해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의 일생을 통해 감독이 무엇을 의도하였는지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굳이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본다면 감독은 각각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밥 딜런의 일생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저항 시인이나 음유 시인같은 하나의 모습으로 규정할 수 없으며, 다양한 삶의 모습을 추구함으로써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던 그의 자유로운 음악의 세계를 예찬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는 6명의 인물들을 통해 밥 딜런의 음악적인 변화의 모습을 다양한 영화적 방식으로 표현한다. 어린 흑인아이인 우디 거스리를 통해 흑인 블루스에 심취하던 밥 딜런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우연히 흑인 가정집에서 옛 블루스에서 벗어나 네가 살고 있는 시대를 표현하라는 한 흑인 여인의 충고를 듣고 멍한듯이 바라보는 그의 모습을 통해 밥 딜런이 시대적인 저항의식을 갖게 된 계기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이어 영화는 잭 콜린스라는 왕년에 잘 나가던 포크 가수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밥 딜런의 일생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는 잭 콜린스가 시대적인 저항 정신을 담은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그의 연주나 잭과 함께한 여성 포크 가수나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그에게 시대적인 저항을 요구하는 팬들의 요구와 기대와 점점 격변하는 사회적인 상황에 지쳐가는 뮤지션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점점 지쳐가던 잭은 케네디의 죽음 이후로 자신의 저항적인 음악에 대해 회의를 가지면서 공식 행사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급기야 잠적해 버리고 만다. 한편 닉슨의 베트남 전 철수 선언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하는 여성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로비 클락의 에피소드는 밥 딜런의 사랑과 결별을 통해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쥬드 퀸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일 것이다. 흑백색 화면으로 전환되면서 한 뮤지션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쥬드는 그를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케이스를 열어 기관총을 발사하는 것처럼 강렬한 일렉트릭 사운드를 발산하여 그들에게 저항한다.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던 그는 자신에게 지나칠 정도로 시대의 저항이라는 것을 요구하는 팬들과 평론가 등에게 저항하기 시작한다. 그의 급격한 음악적인 변화는 팬들의 실망과 분노를 일으키고 방송의 음악 평론가는 시대정신이 없어진 음악이라고 쥬드를 혹평한다. 그를 혹평하는 관객들과 평론가, 그리고 그의 음악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흑인 갱단들에 대한 분노는 Mr. Jones 라는 음악으로 표출된다. 마치 복사된 이미지처럼 똑같은 평론가들이 있는 화장실의 모습과 동물원의 우리에 가두어 평론가에 마이크를 건네는 쥬드의 모습 등의 이미지로 형상화된 영상과 강렬한 음악은 자신에게 집착적으로 저항의식이 담긴 포크 음악을 요구하는 인간들에 대한 환멸과 분노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쥬드의 에피소드를 통해 영화는 밥 딜런의 대중에 대한 환멸로 인한 음악적 변화를 인상적으로 보여주지만 쥬드가 점점 약에 빠져 허물적 거리는 모습을 통해 시대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쥬드가 외부의 인터뷰나 그의 가까운 동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은 건방지면서도 자아도취한 인간의 모습처럼 보인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선글라스를 벗은 쥬드의 눈은 피로감으로 가득찬 모습인데 그가 구토를 하면서 술취한 사람처럼 흐느적거리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처럼 쥬드의 모습은 자아도취적인 외적인 강인함 속에서 내적인 혼돈을 겪는 유약한 인물로 묘사되어 지는데, 흑백색 화면 속의 벽면 속에 비쳐지는 쥬드의 다양한 모습들과 예수의 모형을 보고 넋두리하는 쥬드의 모습을 통해 인물의 혼돈스런 방황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대중과 평론가의 비난으로부터 고통받았던 쥬드의 모습 이후로 영화는 빌리 더 키드라는 남자를 통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살아가는 은둔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빌리가 사는 세상은 서부극과 현대의 모습이 뒤섞인 세계이다. 서부 총잡이의 모습을 한 빌리의 모습과 판자로 만들어진 집들의 모습은 서부시대를 연상시키지만 고속도로 건설안이 통과되어 일가족이 자살했다는 소식과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는 모습들은 재개발로 인해 고통받는 현대의 인간들의 모습같다. 빌리는 서부와 현대가 뒤석인 세계 속에 참여하지 않은 체 살아가려 하지만 마을에 등장한 보안관이 마을의 재개발 계획을 발표하려 하자 빌리는 그 현실 속에 개입해 재개발의 부당함을 항의한다. 결국 빌리는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감옥을 탈출하고 기차에 몸을 실어 여정을 떠난다. 빌리의 에피소드는 쥬드의 에피소드처럼 함축적인 점이 많아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굳이 내멋대로 해석한다면 은둔자였던 빌리처럼 밥 딜런도 은둔 생활을 하지만 결국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점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는 콘서트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밥 딜런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밥 딜런의 진정한 모습은 바로 콘서트에서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음악인으로서의 모습이라는 것을 함축하는 멋진 장면이었다.
ps1. 6명의 인물들 중 벤 위쇼가 연기한 랭보라는 인물은 개인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캐릭터였다. 마치 청문회를 연상케 하는 곳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다른 인물의 행동과 성격을 대사로 제시한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각각 다른 개성을 가진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좋은 편이었지만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이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다.
ps2. 쥬드의 에피소드 중 쥬드가 비틀즈를 연상시키는 4명의 남자와 즐겁게 노는 장면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웃음이 나온 장면이었다.
영화는 6명의 인물들을 통해 밥 딜런의 음악적인 변화의 모습을 다양한 영화적 방식으로 표현한다. 어린 흑인아이인 우디 거스리를 통해 흑인 블루스에 심취하던 밥 딜런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우연히 흑인 가정집에서 옛 블루스에서 벗어나 네가 살고 있는 시대를 표현하라는 한 흑인 여인의 충고를 듣고 멍한듯이 바라보는 그의 모습을 통해 밥 딜런이 시대적인 저항의식을 갖게 된 계기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이어 영화는 잭 콜린스라는 왕년에 잘 나가던 포크 가수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밥 딜런의 일생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는 잭 콜린스가 시대적인 저항 정신을 담은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그의 연주나 잭과 함께한 여성 포크 가수나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그에게 시대적인 저항을 요구하는 팬들의 요구와 기대와 점점 격변하는 사회적인 상황에 지쳐가는 뮤지션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점점 지쳐가던 잭은 케네디의 죽음 이후로 자신의 저항적인 음악에 대해 회의를 가지면서 공식 행사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급기야 잠적해 버리고 만다. 한편 닉슨의 베트남 전 철수 선언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하는 여성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로비 클락의 에피소드는 밥 딜런의 사랑과 결별을 통해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쥬드 퀸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일 것이다. 흑백색 화면으로 전환되면서 한 뮤지션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쥬드는 그를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케이스를 열어 기관총을 발사하는 것처럼 강렬한 일렉트릭 사운드를 발산하여 그들에게 저항한다.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던 그는 자신에게 지나칠 정도로 시대의 저항이라는 것을 요구하는 팬들과 평론가 등에게 저항하기 시작한다. 그의 급격한 음악적인 변화는 팬들의 실망과 분노를 일으키고 방송의 음악 평론가는 시대정신이 없어진 음악이라고 쥬드를 혹평한다. 그를 혹평하는 관객들과 평론가, 그리고 그의 음악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흑인 갱단들에 대한 분노는 Mr. Jones 라는 음악으로 표출된다. 마치 복사된 이미지처럼 똑같은 평론가들이 있는 화장실의 모습과 동물원의 우리에 가두어 평론가에 마이크를 건네는 쥬드의 모습 등의 이미지로 형상화된 영상과 강렬한 음악은 자신에게 집착적으로 저항의식이 담긴 포크 음악을 요구하는 인간들에 대한 환멸과 분노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쥬드의 에피소드를 통해 영화는 밥 딜런의 대중에 대한 환멸로 인한 음악적 변화를 인상적으로 보여주지만 쥬드가 점점 약에 빠져 허물적 거리는 모습을 통해 시대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쥬드가 외부의 인터뷰나 그의 가까운 동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은 건방지면서도 자아도취한 인간의 모습처럼 보인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선글라스를 벗은 쥬드의 눈은 피로감으로 가득찬 모습인데 그가 구토를 하면서 술취한 사람처럼 흐느적거리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처럼 쥬드의 모습은 자아도취적인 외적인 강인함 속에서 내적인 혼돈을 겪는 유약한 인물로 묘사되어 지는데, 흑백색 화면 속의 벽면 속에 비쳐지는 쥬드의 다양한 모습들과 예수의 모형을 보고 넋두리하는 쥬드의 모습을 통해 인물의 혼돈스런 방황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대중과 평론가의 비난으로부터 고통받았던 쥬드의 모습 이후로 영화는 빌리 더 키드라는 남자를 통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살아가는 은둔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빌리가 사는 세상은 서부극과 현대의 모습이 뒤섞인 세계이다. 서부 총잡이의 모습을 한 빌리의 모습과 판자로 만들어진 집들의 모습은 서부시대를 연상시키지만 고속도로 건설안이 통과되어 일가족이 자살했다는 소식과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는 모습들은 재개발로 인해 고통받는 현대의 인간들의 모습같다. 빌리는 서부와 현대가 뒤석인 세계 속에 참여하지 않은 체 살아가려 하지만 마을에 등장한 보안관이 마을의 재개발 계획을 발표하려 하자 빌리는 그 현실 속에 개입해 재개발의 부당함을 항의한다. 결국 빌리는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감옥을 탈출하고 기차에 몸을 실어 여정을 떠난다. 빌리의 에피소드는 쥬드의 에피소드처럼 함축적인 점이 많아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굳이 내멋대로 해석한다면 은둔자였던 빌리처럼 밥 딜런도 은둔 생활을 하지만 결국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점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는 콘서트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밥 딜런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밥 딜런의 진정한 모습은 바로 콘서트에서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음악인으로서의 모습이라는 것을 함축하는 멋진 장면이었다.
ps1. 6명의 인물들 중 벤 위쇼가 연기한 랭보라는 인물은 개인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캐릭터였다. 마치 청문회를 연상케 하는 곳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다른 인물의 행동과 성격을 대사로 제시한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각각 다른 개성을 가진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좋은 편이었지만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이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다.
ps2. 쥬드의 에피소드 중 쥬드가 비틀즈를 연상시키는 4명의 남자와 즐겁게 노는 장면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웃음이 나온 장면이었다.
리처드 기어,
마커스 칼 프랭클린,
미셸 윌리엄스,
밥 딜런,
벤 위쇼,
샤를로트 갱스부르,
아임 낫 데어,
영화,
줄리안 무어,
케이트 블란쳇,
크리스천 베일,
토드 헤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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