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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치가 없는 곳에선 죽음의 가치가 높다. 왜냐하면 현상금 사냥꾼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석양의 건맨'은 현상금이 걸린 범죄자를 쫓는 현상금 사냥꾼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두 남자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면서 현상금 사냥꾼들의 무서움을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성경을 읽는 말끔한 차림의 남자는 기차를 비상 정지시키면서 외딴 역에 내린다. 승무원은 기차를 함부로 비상 정지시킨 남자에게 이유를 따지려 하지만 그의 허리에 차인 총을 보면서 오히려 꽁무니를 내리며 사라진다. 이후 영화는 남자가 현상금이 걸린 남자를 사냥하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보통 근거리에서 권총으로 멋진 총솜씨를 보여주는 무법자들과 달리 장거리용 장총으로 조준하면서 범죄자를 사냥하는 남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후 영화는 또 다른 현상금 사냥꾼인 몬코라는 남자를 소개하고 있는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몬코는 전편인 '황야의 무법자'처럼 권총으로 멋진 총솜씨를 보여주는 남자이다. 몬코가 범죄자와 한패였던 보안관의 뱃지를 떼어내는 모습과 자신이 원하는 호텔의 방에 머물기 위해 숙박하던 남자를 쫓아내는 모습을 통해 현상금 사냥꾼의 무소불위의 힘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는 잔학한 범죄자를 등장시키면서 앞에서 보여준 두 현상금 사냥꾼의 목표가 됨을 암시하고 있다. 무법자들은 감옥에 몰래 잠입하면서 한 남자를 구출한다. 부하들로부터 감옥에 나온 남자는 자신의 방에 있던 죄수를 죽인 후 보초병들을 하나씩 잔인하게 살해한다. 유일하게 살아 남은 보초병에게 '살아남아 나의 악행을 알려라'고 말하면서 껄껄 웃어대는 악인의 잔학한 웃음 후 영화는 현상금이 걸려있는 그의 얼굴을 보여준다. 인디오라고 불리는 갱단의 두목에 걸려있는 현상금을 받기 위해 두 남자는 갱단이 금고를 약탈할 은행을 향해 말을 타고 갱단들을 추적한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던 두 현상금 사냥꾼은 시간이 지나면서 똑같은 목표를 지켜보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말쑥한 옷차림을 한 콧수염 남자가 한 때 대령이었던 더글라스 몰티머라는 사실을 알아낸 몬코는 자신의 사냥감을 건드리려는 몰티머에게 손을 떼게 하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를 손보려 한다. 두 현상금 사냥꾼은 처음으로 대면하면서 서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가방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던 두 남자는 모자를 통한 총솜씨로 서로의 개성을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몰티머가 떨어진 모자를 주으려는 순간마다 몬코는 총을 쏘면서 모자를 잡으려는 몰티머를 도발한다. 조금씩 두 사람의 거리가 멀어지며 몬코의 총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순간, 몰티머는 자신의 특수 권총으로 멀리서 몬코의 모자를 맞추면서 원거리에서 총을 쏘는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두 남자는 술을 마시면서 화해한 후 서로의 목표에 대해 협력할 것을 논의한다. 수가 많은 인디오 갱단을 상대하기 위해 몬코는 인디오의 부하로 들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몰티머는 멀리서 인디오 일당을 추적하는 방식을 취하기로 결정한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일시적으로 협력한 몬코와 몰티머는 콤비과 되어 인디오 일당을 추적하지만 가끔식 서로의 견해차로 대립하기도 한다. 몬코는 몰티머를 따돌리기 위해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그를 제치려 하지만 몰티머는 오히려 몬코의 생각을 헤아리고 그보다 한 수 먼저 행동한다.

영화는 인디오가 자신을 감옥에 넘긴 현상금 사냥꾼의 가족을 잡아 그들에게 복수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잔학성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인디오가 현상금 사냥꾼과 총대결을 벌이기 위해 내민 회중시계를 보여줌으로써 시계와 관련된 인디오의 과거를 암시한다. 이후 인디오가 담배를 피면서 흐물거리는 영상을 통해 그의 과거를 보여주는데, 회중시계를 선물하는 남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인디오의 탐욕스런 시선을 보여줌으로써 인디오가 회중시계와 관련된 기억을 점차적으로 표현한다. 한편 영화는 몬코와 몰티머의 대화를 통해 몰티머의 숨겨진 과거를 암시하고 있다. 왜 현상금 사냥꾼이 되었냐는 몬코의 물음에 몰티머는 자신도 한 때 몬코처럼 혈기 넘치는 시절이 있었지만 어떤 계기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신중해졌다는 말을 한다. 영화는 몰티머가 현상금 사냥꾼이 된 계기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진 않지만 그가 회중시계를 보는 모습을 통해 몰티머가 단순히 돈 때문에 인디오를 쫓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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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석양의 무법자'에서 악한 남자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던 리 반 클리프는 이 영화에선 그야말로 간지의 절정을 보여준다. 시가를 물며 특유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이 영화에선 리 반 클리프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이 영화에는 '아귀레 신의 분노', '노스페라투' 등으로 유명한 클라우스 킨스키가 인디오의 부하로 출연하다는 점이 특징인데, 리 반 클리프와 주점에서 담뱃불을 두고 서로 경계하는 장면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ps2. 전작인 '황야의 무법자'처럼 휘파람 소리로 연주되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일품이다.



Ennio Morriconne - For A Few Dollars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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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무법자'는 폭력과 살육으로 지배된 한 도시에 말을 탄 남자가 등장하면서 시작한다. 우물에 물을 떠먹던 남자는 건너편 집으로 건너가는 아이가 무법자들로부터 총으로 위협받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한 여인을 본 남자는 그녀를 못본 체 하고 여정을 떠난다. 이후 남자는 도시의 내부로 진입하게 된다. 종을 치는 사내는 말을 탄 남자에게 '이 곳에선 부자가 되거나 죽는 것 밖에 없다.'는 말을 남기며 그를 쫓아다닌다. 이후 남자의 말을 향해 무법자들이 총을 쏴대는 바람에 간신히 몸을 피한 남자의 모습을 본 종치는 사내는 당신은 부자가 되기는 글렀다고 빈정거린다.

영화는 술집의 노인의 대사를 통해 마을이 이토록 무법자들의 천국이 되었는지를 묘사한다. 그는 로호 세 형제와 벡스터 집안이라는 두 집단으로 나누어진 갱 집단 덕분에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체 숨죽여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일하는 사람이 관을 짜는 노인이라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통해 영화는 무법자들의 천국이 된 덕분에 죽어 있는 마을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인 남자는 전형적인 서부극의 영웅과는 다른 인물이다. 그는 정의감에 총을 사용하면서 무법자들과 대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혼란한 상황을 이용해 영리한 머리를 사용하면서 무법자들과 협력하고 자신의 부를 톡톡히 챙긴다. 노인에게서 마을의 실세가 두 세력으로 나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남자는 그에게 부자가 되러 일하러 간다는 말을 남긴 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벡스터 집안의 무법자들을 죽인 남자는 이걸 이용해 로호의 갱단에 들어와 그들과 협력하는 척한다. 로호 형제의 대화를 통해 멕시코 기병대가 올 때까지는 조용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남자는 기병대를 추적하면서 그들이 남긴 말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멕시코 기병대가 로호의 두 번째 동생인 라몬의 계략에 의해 학살되는 모습을 지켜본 남자는 이 상황을 이용해 한 몫을 챙기기 시작한다. 남자는 일부러 두 구의 군인 시체를 끌고와 묘지에 남긴 후 로호 집안과 벡스터 집안을 오고 가며 그들의 의심을 부추기면서 자신의 몫을 챙긴다. 이후 벡스터 집안의 장남이 인질로 잡히자 남자는 라몬이 아끼는 마리솔이란 여인을 붙잡아 벡스터 집안에 넘긴다. '이제 곧 있으면 당신은 부자가 되겠군.'이라고 말하는 벡스터 부인의 말에 남자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질로 붙잡힌 벡스터 집안의 장남인 안토니오와 라몬이 아끼는 마리솔이 서로 교환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 돌발상황이 남자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한다. 영화 초반부에서 갱들에게 협박을 받던 아이는 마리솔을 향해 달려간다. 라몬을 향해 이동하던 마리솔은 아이를 껴안으면서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노인에게서 아이가 마리솔의 자식임을 알게 된 남자는 마리솔에게 어서 당신을 찾는 라몬에게 가라고 소리치고 그녀를 애타게 그리워 하는 아이와 마리솔의 남편에게 어서 이 곳을 떠나라고 협박한다. 남자는 라몬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써 그의 환심을 사게 되지만, 돈에 집착하는 남자의 모습을 본 술집 주인은 침을 뱉으며 그를 비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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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nio Morriconne - A Fistful of Doll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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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은 이스라엘의 한 가정에서 일하던 중국인 가정부가 사라지면서 남은 중국인 아이와 스튜디어스 일을 하는 이스라엘 여인의 만남을 그린 영화이다. 1시간 이후에 돌아오겠다는 가정부가 하루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중국인 아이는 본의 아니게 어머니의 고용주가 사는 집에서 살게 된다. 달라도 너무 다른 이스라엘 여인과 중국인 아이의 만남은 처음에는 어색함의 연속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미리는 소년의 말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해 답답함을 느낀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겁없이 집을 나와 애타게 어머니를 찾는다. 서로 어색하기만 하던 여인과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놓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점점 서로에 대한 호감을 얻고 자신의 인생을 구원받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들처럼 '누들'도 익숙한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영화는 어머니를 찾는 소년의 애타는 감정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예를 들어 좀 있으면 온다는 어머니를 기다리기 위해 한나절 동안 말없이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은 초조함을 불러 일으키며, 자신이 살았던 공동주택의 이름을 중국어로 애타게 부르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미리와 길라에게 호소하는 어린 아이의 모습은 거짓된 연기가 아닌 마치 실제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더해 영화는 이민국 에피소드를 통해 이주 노동자에 대해 강경한 이스라엘 이민국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현실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미리와 길라 자매는 아이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 이민국을 찾아가지만, 이민국의 관리는 불법체류자로 붙잡힌 누들의 어머니에 대한 냉정한 시선을 보여준다. 아이가 있다는 중국인 여인의 애절한 사연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은 들어보지 않은 체 여인이 거짓말 한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강제출국 시켰다는 이민국 관리의 말은 불법체류자에 대해 냉혹한 이스라엘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미리와 누들의 모습을 통해 서로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배우고 나누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미리와 길라 자매가 누들이라는 중국인 아이를 어머니에게 찾아주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여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리와 길라는 피를 나눈 자매 사이이지만 만나는 순간마다 티격태격한다. 길라는 미리를 보자마자 특유의 독설을 내뱉으면서 미리의 속을 긁어놓는다. 미리 역시 길라의 독설을 그대로 맞받아치면서 화를 내고 싸운다. 자신의 남편과 헤이지기 일보 직전인 길라는 남편과 속을 터놓고 대화하는 미리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에 대한 의심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이런 길라의 알 수 없는 마음은 누들을 찾는 과정에서 미리가 옛 이웃인 마티라는 남자를 만나면서 조금씩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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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스라엘 영화들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최근에 본 영화 두 편 속에는 이스라엘 내에 있는 아시아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모스 지타이 감독의 '에이릴라'의 초반부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위해 중국인 인부들과 일당을 흥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젤리피쉬'에서는 필리핀 가사 도우미(?)를 통해 타민족에 대해 배타적인 이스라엘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여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최근 이스라엘 영화에서 아시아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스라엘 내에서 이주 노동자들과 관련된 문제가 대두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 내에서 아시아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세계와 대립하며 유태인이라는 유일 민족으로 국가를 지켜오던 이스라엘 사회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다른 민족들을 포용해야 할 기로에 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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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공개된 단편 다찌마와 리를 처음 봤을 땐 다소 황당한 느낌도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재밌게 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다찌마와 리 극장판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하던 영화였는데 보고 나서 느낀 점은 상당히 호쾌한 영화였다는 점이다. 시종일관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는 코믹함과 무협영화를 연상시키는 멋진 액쑌 그리고 마리와 금연자를 두고 갈등하는 다찌마와 리의 슬픈(?) 로맨쓰가 멋진 영화였다.

영화는 마치 첩보 코미디 영화의 형식처럼 진행된다. 내부 배신자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처단하는 다찌마와 리의 모습이 소개된 후 영화는 다찌마와 리의 연인 금연자의 실종 이후 독립군의 이름이 적힌 황금불상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인 일본군과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만주로 파견된 다찌마와 리의 대립을 통해 전개된다. 마치 007처럼 잘생긴 쾌남 다찌마와 리와 팜프파탈 마리가 황금불상을 찾는 과정은 첩보 스릴러의 틀을 갖추고 있지만 후시 녹음을 통한 문어체의 닭살스러운 대사를 통해 웃음을 이끌어내며 오버스러운 행동을 통한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 만주, 미국으로 장소가 바뀌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소라는 점이 특징인데, 한국의 장소를 외국 지역처럼 보여주면서도 그 지역의 특색에 맞도록 섬세한(?) 배려를 하면서 웃음을 이끌어 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을 설득력있게 보여주기 위해 인물들이 지나가면서 미국인의 영어 대사가 들려오는데,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나도 알아들을 수 있는 재미있는 대화가 오간다. 여기에 일본군의 대사를 통한 유머는 코미디로서의 본분을 훌륭히 보여주고 있는데, 자막과 일본인의 대화를 비교해 가면서 들어보는 재미가 상당히 쏠쏠하다. 또한 외국인의 대화를 해석하는 자막을 마치 디빅 파일의 자막처럼 '너무 빨라서 해석이 불가능하네요.', '저작권은 ...에게 있으니 무단 배포 금지합니다.', '이 자막을 사랑하는 ...에게 바칩니다.' 를 배치해 불법 디빅 파일 자막을 풍자하고 있다. (한편으론 이 유머를 인식할 수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 보내는 따끔한 지적일 수 있겠다.)

만주에서의 에피소드는 80년대의 만주 웨스턴 영화를 오마쥬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만주 웨스턴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 영향을 잘 알지 못해서 영화를 이해하는 데는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다찌마와 리가 마리와 키스하려는 순간 절벽에서 미끄러지는 척하면서 넘어지고 '바보'라고 속삭이는 마리의 모습은 옛 영화에서 나오는 커플들의 순박한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만주에서 액션 씬은 오버스러운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웃음을 이끌어 내는데, 예를 들면 남박사가 준 총을 사용하면서 남박사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는 모습과 총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그 총을 엉뚱한 용도로 써서 위기를 극복하는 다찌마와 리의 모습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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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영화인 '달리는 아이들'은 아미로라는 소년을 통해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소년의 일과를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아미로의 시선과 표정을 통해 소년의 삶에 대한 불안감과 피로감을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초반 쓰레기 더미에서 고물을 줍는 아미로는 거리를 걷다가 기침을 해대면서 걷기 조차 힘들어 하는 여인을 바라 보는데, 아미로의 불안한 표정을 통해 마치 자신의 미래를 반추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아미로는 친구의 도움으로 바다에 떠다니는 병을 줍는 일을 얻게 된다. 하나라도 더 줍기 위해 아이들과 싸우면서 병을 차지하지만 자신보다 덩치 큰 아이가 자신이 먼저 봤다는 이유로 아미로가 주은 병을 뺏어가고 아미로는 그 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아이들과 힘겹게 싸운다. 결국 아미로는 덩치 큰 아이에게 병을 빼앗기게 되고 그의 동료들은 처음 온 아미로의 행동을 두고 건방지다고 비난한다. 혼잣말로 '저 병은 내거야'라고 중얼거리며 힘없이 걷는 아미로의 모습에서 생존의 경쟁에 지친 소년의 슬픔이 느껴진다. 이후 아미로는 바다에서 병을 줍는 일을 계속 하게 되면서 아이들과 친해지지만 또 다른 위험이 아미로를 힘들게 한다. 아이들이 병을 줍던 중 바다에 상어가 나타나자 아이들은 서둘러 바다에서 나와 해변으로 달려간다. 아미로는 지친 표정으로 해변으로 나와 멍한 표정을 짓는다. 이후 아미로는 얼음물을 팔기 위해 길을 걷다가 다리 한 쪽이 없이 걸어가는 장애인을 보게 되는데, 고철을 주울 때 기침으로 불편해하는 여인을 바라본 것처럼 다리가 없는 남자의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소년의 얼굴을 통해 자신의 미래가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년의 불안감을 표현한다.

아미로는 병을 줍는 일을 그만 두고 얼음물을 들고 파는 장사를 하기 시작한다. 열심히 걸어 다니면서 물을 팔던 소년은 자전거를 탄 남자가 돈을 지불하지 않은 체 도망가자 남자를 쫓아가기 위해 열심히 달린다. 생존을 위해 물을 팔아본 경험이 전무한 나로서는 겨우 물 한 잔 값때문에 저렇게 죽어라고 뛰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부모 없이 혼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뛰어야 하는 소년의 입장을 생각해 보니 그의 행동을 가벼이 볼 수만은 없었다. 아미로는 돈을 떼어간 남자를 잡아내고 그에게 돈을 요구한다.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미로에게 돈을 지불하고, 소년은 그 돈을 받자 마치 황금을 발견한 듯이 기뻐하며 미소를 짓는다. 이후 아미로는 얼음을 구하기 위해 얼음을 구입하는데, 물 값을 떼어간 어른처럼 소년이 구입한 얼음을 들고 도망치는 어른들을 통해 또 다시 삶의 시련을 보여준다. 얼음을 되찾기 위해 소년은 어른을 쫓아 힘겹게 달리고 얼음을 되찾은 소년은 건너편 차로로 건너가 자신의 얼음을 뺏어간 어른을 도발하고 약올린다. 아미로는 간신히 얼음을 되찾았지만 이미 얼음은 녹아가고 있었다. 얼음을 놓은 소년은 얼음의 냉기를 없애기 위해 필사적으로 손을 비벼댄다. 이후 아미로는 자신의 친구의 도움으로 얼음물을 파는 장사를 그만 두고 항구에서 구두를 닦는 일을 얻게 된다. 하지만 아미로는 라이터가 없어졌다는 한 외국인 때문에 도둑으로 몰리게 된다. 생존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아미로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은 도둑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어른들은 그의 구두통을 뒤집어 라이터를 찾으려 한다. 도둑으로 몰렸던 아미로는 자신을 도둑으로 오해하게 만든 외국인을 만나 자신은 도둑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외국인은 오히려 그를 귀찮은 듯이 떼어내려 한다. 결국 아미로는 외국인에게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다.

여러 에피소드 속에서 아미로가 시련을 겪는 계기를 제공한 사람들이 다름아닌 어른들이라는 점이 이 영화의 특징인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삶의 희망을 잃지 않는 긍정적인 아미로의 모습과는 달리 가난한 아미로의 자산을 훔치고 도망치는 탐욕스런 어른들의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한편 영화는 아미로가 친구들과 1등을 위해 경쟁하면서 달리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는데, 후반부 불길이 거센 유정 지역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소년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듯한 의도가 느껴진다. 얼음이 불길에 점점 녹아내리는 동안 아이들이 자신의 경쟁자들의 발을 걸고 어깨로 밀치면서 1등을 차지하려는 모습은 순수한 경쟁이라고 보기는 애매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1등으로 들어온 아미로가 자신의 얼음을 가지지 않고 아이들끼리 서로 얼음을 돌리는 모습은 아이들의 순수한 면이 긍정적으로 표현된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달리는 아이들' 속에서 묘사된 아미로의 삶은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지친 소년의 모습이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소리치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 영화는 아미로의 꿈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지만 커다란 선박을 향해 마치 자신을 태워 돌라는 듯이 소리치는 모습을 통해 배를 동경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일이 끝나면 항상 선박들이 정착해 있는 항구를 걸어 다니면서 잡지를 훝어보던 아미로는 우연히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경비행기를 보게 되고, 자신의 동경 대상을 비행기로 바꾸게 된다. 소년은 배를 향해 소리쳤던 것처럼 경비행기를 향해 괴성을 지르며 애타게 소리친다. 영화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비행기와 관련된 잡지들을 사모으고 종이를 잘라 벽에 붙이는 아미로의 모습을 통해 소년의 꿈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우연히 잡지를 사다가 가판대의 주인이 아미로에게 한 말은 소년의 마음을 갈기 찢는다. 외국어로 된 잡지를 사는 아미로가 사실은 글을 읽을 줄도 모른다고 고백하자 주인은 그럼 이제까지 글도 읽을 줄 모르냐고 핀잔을 준다. 아미로는 해변 가에서 자신이 산 잡지를 찢어대며 '왜 나는 글을 읽을 줄도 모를까'라고 소리친다. 자신이 힘겹게 번 돈으로 산 잡지를 찢는 아미로의 모습은 자신의 무식함을 탓하는 소년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이후 아미로는 홀로 학교를 찾아가 뒤늦게 언어를 배운다. 교실에서 언어를 배우는 모습과 소년이 괴성을 지르며 단어를 잊지 않기 위해 소리치는 모습을 통해 단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소년의 간절한 심정이 느껴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아미로의 간절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뒤에서 날라오는 비행기를 향해 소리지르며 단어를 외우는 소년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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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재개봉한 '영웅본색'을 드림시네마에서 감상했다. 사실 다시 이 영화를 봤을 때 왠지 촌스럽고 오버스러운 장면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을 것 같은 기분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서 웃음보다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애수가 많이 느껴졌다.

지금도 멋있지만 스크린 속에서 살아 숨쉬는 주윤발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초반 인트로 장면에서 위조 지폐로 불을 붙여 담배를 피는 멋드러진 장면부터 후반부에서 범죄자인 형을 애써 외면하는 아걸에게 화를 내는 마지막 모습까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주윤발의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너무 감동적이었다. 또한 작고한 장국영이 연기한 아걸이 범죄자인 형에 대해 갈등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으며, 형사인 동생 앞에서 떳떳히 서지 못한 체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형 자호를 연기한 적룡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영웅본색'의 송자호의 모습은 마치 브라이언 드 팔마의 '칼리토'를 연상시킨다. 각 영화의 주인공들이 범죄에서 벗어나 새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지만 주변의 상황이 주인공을 범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 유사하다. 하지만 자신의 절친한 동료들의 배신으로 인해 몰락하는 칼리토와 달리 송자호는 자신의 과거가 미래의 삶을 구속하는 굴레로 작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범죄자라는 과거의 죄 때문에 자호의 동생인 아걸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승진에 제약을 받고, 형인 자호는 동생인 아걸에게 형제의 정보다는 범죄자로서의 의심을 받게 된다. 범죄자가 과거의 죄를 스스로 반성하려고 해도 법적, 사회적 구조의 제약으로 인해 제대로 된 삶을 구현하지 못하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는 모습은 지금 봐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겠다.

'영웅본색' 속의 갱스터 세계는 인간에 대한 의리와 애정이 없는 비열한 세계로 그려진다. 초반부에서 형님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던 아성이 시간이 흐른 후 조직의 보스로 승진하면서 자신의 형님이면서 스승이었던 소마에게 적선하듯이 돈을 뿌려대고, 출소한 자호가 위조 지폐 유통에 협조하지 않자 그의 절친한 동료이면서 동생이나 다름없는 소마를 잔인하게 두들겨 패고 자호의 직장을 훼방놓는 모습을 통해 갱스터들의 비열한 모습을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장 친한 친구도 배신하는 모습들을 그려내면서 인간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보여주었던 브라이언 드 팔마나 마틴 스콜세지의 갱스터 영화들과는 달리 '영웅본색'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버릴 수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아름다운 우정을 보여준다. 보트를 타고 도주할 순간 소마에게 먼저 가라고 말하면서 그를 보내주는 자호의 모습과 보트를 타고 도주하던 중 차마 자호를 버리지 못해 방향을 돌려 전장에 참여하는 소마의 모습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형제보다도 단단한 우정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수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이 영화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소마와 자호의 모습을 통해 인간에 대한 조건없는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그렇지 않나 생각한다.

ps. '영웅본색'을 다시 보니 이상하게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들이 많이 연상되었다. 예를 들면 총알이 없어 총을 쓰지 못하는 자호에게 '돈이 검은 색을 흰 색으로 바꾸어 놓지'라고 말하면서 복수를 하지 못하는 자호를 비웃는 아성의 모습은 '언터쳐블'에서 주인공이 차마 총을 쏘지 못하자 빈정거리는 남자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두 인물이 흰색 정장을 입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ps2. 드림시네마에 가 보니 저번에 개봉한 '미션'의 간판 옆에 화백이 손수 그린 '영웅본색'의 간판이 놓여 있었다. 옛 극장의 애수를 다시 살리는 느낌이 들어서 손수 그린 간판이 반가웠다. 그리고 매점에서 포스터를 500원에 팔고 있었는데, 꽤 저렴한 가격이어서 하나 구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엔딩 크레딧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라이트를 켜는 극장의 방침이 아쉬었다. 옛 영화팬들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극장의 라이트를 엔딩 크레딧 후에 켜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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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3. 엔딩 크레딧 후 흘러나오는 장국영의 '당년정(當年情)'을 오랫만에 다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직도 스크린에서 활동하는 두 배우와 달리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장국영을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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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인물인 뮤지션의 삶을 스크린에 담은 영화들은 각자만의 개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이애나 로스가 활동하던 슈프림스를 소재로 한 '드림걸즈'는 뮤지컬의 방식으로 슈프림스의 활동을 인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에디뜨 삐아프의 삶을 소재로 한 '라비앙 로즈'는 교차편집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라는 곡으로 그녀의 삶을 마무리하며, 밥 딜런의 삶을 소재로 한 '아임 낫 데어'는 가상의 여섯 자아를 내세워 그의 삶을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바비 대런(Bobby Darin) 이라는 가수의 일생을 그린 '비욘드 더 씨'는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의 특색을 담아내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바비 대런의 삶을 그리기 위해 감독인 케빈 스페이시는 뮤지컬의 형식을 도입하면서 음악을 바비 대런의 삶에 맞춰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으며, '라비앙 로즈' 처럼 극적인 교차편집은 없지만 마지막 곡을 부르는 모습을 통해 바비 대런의 삶을 극적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아역배우를 연기하는 아이를 통해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그리면서 한편으로 자신이 성장한 이후로도 아이를 등장시켜 바비 대런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를 그려낸다.

영화는 자신의 일생에 관한 영화를 만드려고 하는 바비 대런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콘서트를 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 음악을 신나게 부르다가 한 아이의 모습을 본 이후 영화 촬영을 중단한 바비 대런은 어디서부터 영화를 시작해야 할지 고민한다. 15년 동안 이 작품을 구상 했다는 케빈 스페이시의 고뇌가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셈인데, 바비 대런의 극적인 삶의 순간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이 때 자신의 아역을 연기할 소년이 등장하면서 그에게 영화의 시작을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라는 조언을 한다. (이 때부터 소년은 바비 대런의 분열된 자아이면서 영화의 방향을 이끌어주는 조언자로 등장한다.)
 
영화의 초반부는 심장병으로 15세 까지 밖에 못살거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어린 시절의 바비 대런이 지병을 이겨내고 뮤지션으로 성공하는 과정을 인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자신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쳐주면서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준 어머니, 그리고 바비의 쾌유를 위해 없는 형편에 피아노를 장만해준 그의 매형 찰리와 그의 누나인 니나의 사랑 덕분에 바비 대런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뮤지션으로 성공의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뮤지컬의 방식을 통해 소년이었던 바비가 성장한 청년으로 자라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케빈 스페이시가 직접 노래와 율동을 하며 멋진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후 영화는 브롱크스 출신의 무명 가수인 바비 대런이 성공 가도를 그리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50년대 이후의 배경을 살리기 위해 영화는 바비 대런이 TV로 방송되는 쇼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흑백으로 촬영하여 바비 대런의 성공과정을 케빈 스페이시의 음악과 춤으로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바비 대런의 지나친(?) 성공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 보지도 못한다. 영화는 이런 바비 대런의 심정을 두 자아로 표현하는데 어머니의 추모식조차 제대로 지켜보지 못하고 무대 의상을 갈아입고 나가는 성인의 자아와 홀로 남아 성공을 상징하는 자신의 앨범을 어머니의 시신에 놓는 아이의 자아를 표현해 어머니를 잃은 바비 대런의 슬픔을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한편 바비 대런은 영화계에 진출한 프랭크 시나트라처럼 영화의 조연으로 출연하게 되는데, 산드라 디라는 배우와 작업하면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영화는 사랑에 빠진 바비 대런이 산드라 디와 데이트를 하면서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뮤지컬의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사실 케빈 스페이시와 케이트 보스워스의 조합은 나이 차라든지 연기 경력 등의 면에서 전혀 맞을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의외로 인상적인 호흡을 보여준다. 부부로서 첫 날을 보낼 때 울적거리며 두려워하는 산드라를 위해 마치 기사도를 지키는 신사처럼 칼을 침대에 놓아 선을 넘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녀를 위로하는 바비 대런의 행동을 통해 순수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바비와 산드라의 사랑은 조금씩 무너진다. 결혼할 당시에는 그토록 그녀를 배려하던 바비는 영화를 촬영하는 산드라의 스케쥴은 고려하지 않은 체 자신의 입장에 맞게 공연을 다니면서 가정에 소홀하게 된다. 반면 산드라는 몇 일만이라도 자신의 아들인 도드와 함께 집에서 지내길 원했지만 바비의 일방적인 스케쥴 덕분에 그녀는 영화 촬영이 끝나자마자 그가 순회하는 공연 장소를 향해 이동하게 된다. 바비 대런이 공연을 하는 동안 비행기를 타면서 지쳐가고 점점 술에 쩔게 되는 산드라의 모습을 통해 점점 무너져 내려가는 두 사람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조금씩 무너져 내리던 균열은 바비 대런의 오스카 시상식을 계기로 폭발하게 된다. 남우 조연상 후보로 선정된 바비 대런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배우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자 집에 돌아와 분노를 이기지 못한 체 화를 내게 되고, 급기야 자신이 다른 남우 조연상 후보들과는 달리 산드라 같은 형편없는 배우와 결혼했다고 스스로의 신세를 한탄하게 된다. 결국 두 남녀는 짐을 싸면서 서로 집을 나가려는 촌극을 벌이게 된다. 분노한 바비 대런은 골프채로 자신의 차를 박살내고 그대로 주저 앉는데, 산드라가 다시 집에 돌아와 서로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사랑의 균열을 회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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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에서 폭발적인 환호를 보였던 '다크 나이트'는 과연 명불허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었다. 소문대로 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는 잭 니콜슨과는 다른 방향으로 그만의 조커를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영화의 완성도는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의 아성을 위협할 만큼 뛰어났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의 가장 큰 미덕은 조커나 펭귄 같은 악당의 포스에 밀려 배트맨의 무게감이 덜했던 팀 버튼의 영화들에 비해 배트맨의 고뇌 과정을 인상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선과 악의 양 극단에 있는 인물들인 하비 던트와 조커 사이에 놓여 있는 배트맨은 자신의 정의를 어떤 방식으로 실현시켜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영화 초반 배트맨은 마약 거래 현장에서 범죄자들을 제압하지만 악당들은 그를 더 이상 두려워 하지 않는다. 악당들은 배트맨의 이미지를 이용해 그를 흉내내고 있으며, 오히려 그들은 배트맨에게 당신은 우리들과 다를 바 없는 악당일 뿐이라고 외친다. 게다가 배트맨은 정의를 위해 이중적인 생활을 하며 평화로운 고담 시티를 위해 일하지만 그의 노력은 썩어빠진 사회구조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아무리 그가 범인들을 잡아도 갱들이 지배한 고담의 상부구조 덕분에 범인들은 공권력의 심판을 받지 않고 계속해서 악행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하비 던트라는 검사의 등장은 고담의 평화를 지킬 실질적인 권력을 실행해 줄 백기사 같은 존재이다. 배트맨이 음지에서 범인들을 소탕할 뿐 그들에게 실질적인 힘은 발휘하지 못하는 데 반해 하비 던트는 갱들의 협박을 받으면서도 그들을 처벌하기 위해 법정에 올려놓는 정의로운 남자다. 판사와 경찰 청장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경찰의 한심한 공권력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운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정의를 위해 힘쓰는 백기사와 같은 이미지를 구현한다. 하지만 올곧은 하비 던트의 선은 그가 자주 애용하는 동전의 앞, 뒤면처럼 극단적이다. 하비 던트는 자신이 지키려 했던 소중한 목표가 힘없이 사라지는 과정을 무기력하게 바라보게 되고, 결국 그를 또 다른 극단의 시험대로 몰아넣는다.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서커스의 광대처럼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희극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낸 잭 니콜슨의 조커 이미지를 조금 줄인 대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와 '쏘우'의 직쏘의 성격을 부여 받은 인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트맨을 죽이는 댓가로 거액의 돈을 약속받은 조커는 시간이 지날 수록 그와 손잡은 악당들조차 몸서리칠 만큼 끔찍한 절대악을 보여준다. 돈을 찾기 위해 고용된 안톤 쉬거가 자신의 룰을 지키기 위해 돈은 어느새 잊고 사람을 죽이기 위해 찾아가는 것처럼 조커에게 있어 돈은 하나의 유흥거리에 불과하다. 알프레드가 이야기한 버마의 악당들처럼 조커는 순전히 자신만의 쾌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사람들을 죽여대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 하지만 그가 혼란을 일으키는 방식은 퍼레이드를 벌이면서 돈을 뿌려 대는 이벤트가 아닌 직쏘의 게임처럼 치밀하고 잔인하다. 그가 게임을 하는 방식은 다름아닌 선택의 형식인데 마치 '쏘우'의 직쏘처럼 양쪽에 폭탄을 설치해 놓고 인간의 숨겨져 있던 악의 이면을 끄집어내도록 유도하는 조커의 계획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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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엔딩 크레딧에 요절한 히스 레저와 다른 한 사람에 대한 추모를 제외하고 특별한 추가 영상은 없으니 화장실이 급하신 분은 크레딧을 끝까지 보지 않아도 된다.

ps3. 15세 관람가에 맞게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세심하게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스릴러나 공포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충격과 공포를 인상적으로 배치해 놓은 점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ps4. 그런데 영화를 너무 깔끔하게 마무리해서 다음 편은 어떻게 만들지 모르겠다. 아마도 '다크 나이트'는 팀 버튼의 배트맨 영화들처럼 한동안 깨지 못할 징크스로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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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큐브에서 상영하는 <오,컬트! 호러코스터> 상영작 중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홀리 마운틴'을 감상했다. 작년에 개봉했을 때만 하더라도 엽기적인 장면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일부러 보지 않았던 영화였는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이번 기회에 스크린으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뒤늦게 본 작품이지만 정말 여러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엽기적인 장면들, 이를테면 남성의 성기를 거세하는 장면이나 눈에서 눈알을 뽑는 장면 등 지금 시점에서 봐도 거북스러운 장면들이 많아서 보는 내내 고역이 있었지만 영화 속에 묘사된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이러한 단점들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다. 또한 소문대로 난해한 내용들로 이루어진 영화여서 스토리를 이해하기에도 벅찼지만, 영화 속에 묘사된 풍경들이 몇 일 전에 본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갱들' 속에 묘사된 멕시코의 모습과 많이 오버랩되어서 보는 내내 흥미로웠다.

영화는 얼굴에 파리 떼가 달라붙은 체로 누워 있던 한 남자가 팔다리가 없는 난쟁이의 도움으로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외모가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시키는 남자가 난쟁이와 함께 현대의 멕시코에 있는 도시를 둘러보는 에피소드를 통해 군세력과 독재자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멕시코의 모습을 컬트적 이미지로 보여준다. 해부한 개들을 매달아 놓은 십자가들을 들고 행진하는 군인들과 X마크가 입에 표시된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이는 모습들을 통해 시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군부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표현하는데, 죽은 시민들의 시체 속에서 새들이 나와 날라가는 모습을 통해 죽음을 새의 형상으로 상징화 하여 자유로운 영혼을 표현하고자 않았나 생각한다. 군인들의 잔인한 학살행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촬영하면서 웃어대는 관광객들과 군인과 놀아나는 천박한 여인을 통해 인간들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영화는 남자가 교회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교회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데,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끄는 모습을 흉내내는 남자의 모습을 찍어대면서 낄낄거리는 인간들의 모습과 교회에서 그리스도 상을 자신의 애인처럼 껴안고 누워있는 교황 복장을 한 남자의 모습을 통해 교회의 타락한 종교적 행태을 조롱한다. 하지만 초반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서커스 씬이다. 아즈텍 문명을 연상시키는 건물들의 모형에 원주민 복장을 입혀 놓은 이구아나같은 도마뱀 류의 생물들을 놓더니, 스페인 모형배가 건물 모형에 다가오면서 스페인 갑옷복장과 신부 복장을 한 두꺼비들을 잔뜩 풀어 놓는다. 영화는 가톨릭 신부 복장을 한 개구리를 클로즈업으로 줌인한 후 건물들을 향해 올라가는 스페인 갑옷 복장을 한 두꺼비들을 보여주는데, 이후 모형은 피로 물들게 되고 폭발이 일어나면서 모형이 폐허가 되어 버리는 모습을 통해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잔인하게 학살당한 아즈텍 문명의 원주민들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이후 영화는 높이 솟아있는 건물을 보여주고 있는데, 낚시대 사이로 황금을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남자가 건물을 향해 올라가면서 영화의 배경은 현대의 멕시코에서 기묘한 종교적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둥근 홀로 이어진 구멍과 마치 지구의 핵을 표현한 듯한 반원들의 확장된 배경, 그리고 무지개 색깔로 구성된 벽들로 표현된 시각적 이미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하게 만든다. 주인공인 남자 앞에 앉아 있는 연금술사는 남자와 결투 후 황금을 갖고 싶냐는 질문을 던진다. 재물에 욕심을 가진 남자는 그에게 응답을 하고 연금술사는 똥을 금으로 변화 시킨 후 그에게 전해준다. 연금술사는 금을 만들고 싶어하는 남자에게 인간성을 부여하기 위해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는데,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특이한 종교적 의식을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타로 카드 그림들이 놓여져 있는 배경이 이러한 종교의식을 진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연금술사 역을 맡은 알레한드로 조르도프스키 감독이 인상적으로 연기한 덕이 크다. 도사 같은 범상치 않은 겉모습으로 주인공을 압도하더니 그에게 진리를 하나씩 부여하는 모습은 제법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금술사는 주인공인 남자와 여정을 함께 할 7명의 사람의 모형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그들을 소개하는데, 특이한 것은 그들이 태양계의 행성을 상징한다는 점이라는 점이다. 또한 그들의 출신도 특이한데 7명의 남녀들이 다름아닌 현대의 자본가와 군수업자, 정치가, 예술가 그리고 경찰청장 등이라는 점이다. 7명의 사람들을 하나씩 소개하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엽기적인 컬트적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어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몇몇 인물들의 에피소드들은 멕시코의 자본가와 정치인 그리고 군인의 모습을 블랙 코미디의 형식으로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아이들의 장난감 총을 만드는 일을 담당한다는 여자의 에피소드는 미디어를 통해 적의를 심어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페루를 공격 대상으로 삼기 위해 페루 모형의 장난감을 만들어 페루인들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주고 미국의 히어로 북을 연상시키는 만화책 제목에 '페루 악당을 물리쳐라'라는 내용을 삽입해 아이들이 성장한 후 곧바로 페루에 대한 적의감을 나타내도록 한다는 여자